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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림 편지: 넌 저 태양의 햇살처럼 처음으로 내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였어

작성자 하태혁 작성일 2018.03.22 조회수 7599

 

"그림 편지"

넌 저 태양의 햇살처럼

처음으로 내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였어

 

 

중학교 1학년 한 반 아이들이 U.H.M. Gallery를 찾아왔다. 맞이하는 내 마음엔 기도가 하나 있었다. 부디 예술작품을 통해 맛보는 삶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기를. 오십이 저만치 보이는 지금에야 알게 된게 아쉬웠다. 예술작품을 통해 일상 속 그윽한 아름다움을 맛보는 삶, 그것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나 싶었다. 고민 끝에 설명보다는 체험을 궁리했다. 예술작품을 보면서 난 왜 감동하고 뭉클해지는지 돌아봤다.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. 그 중 하나는 작품이 일깨워주는 삶의 맛과 향기다.

 

쿠쉬의 “Bound for Distant Shores”을 처음 봤을 때 시간이 멈췄다. 재깍재깍 초침 소리는 사라지고 그날 그 해변을 가슴 속에 가득 채웠다.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지,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어머니와 함께 앉았던 그 해변, 그 절벽에 나를 다시 앉힌다. 어머니, 바람에 흩날리는 그 머리결, 그 눈빛이 일렁인다. 사진처럼 선명하지 않지만,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그 빛깔로 보여준다.  

 

어떻게 하면 중학교 1학년, 처음 발을 들여놓은 갤러리에서 그런 경험을 맛보게 해줄 수 있을까? 아이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시간을 줬다.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마음을 끄는 작품을 골라서 한 사람에게 보내주도록 했다.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그 사람에게 보내주고 한 줄이라도 글을 써서 보내주게. 그리고 함께 나눴다. 어느 그림을, 왜 그 사람에게 보냈는지, 뭐라고 썼는지.

 

한 여학생이 “Symphony of The Sun”을 골랐다. 누구에게 보냈는지 묻자, 같은 반 친구를 가리켰다. 그 이유는 유치원 때 추억에 담겨있었다. 유치원 때 처음으로 낯선 세계를 만난다. 그 낯선 곳에서 그 친구가 다가와 손을 내밀어줬다. 저 햇살이 그때 그 친구의 손처럼 느껴져서 보내줬다고 했다. “넌 저 태양의 햇살처럼 처음으로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였어.” 태양이 양손으로 교향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. 두 줄기 빛이 태양의 두 손이라고 설명해준 적이 없다.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. 그러나 지금까지 1년 다 되도록 이 작품에 대해 들어온 그 어떤 감상보다 가슴 깊이 울려왔다.

 

남학생 하나는 같은 반 친구에게 코뿔소로 표현한 “Trojan Horse”를 보내줬다. 그 아이는 뭔가 움추려드는 것처럼 보였다. 갤러리를 안내해주면서 질문을 던지면 목소리도, 표정도, 몸도 거북이 처럼 숨어드는 듯 보였다. 부끄러움이 많다기 보다는 두려움으로 느껴졌다. 그 반에서 가장 큰 남자 아이를 무엇이 그렇게 움추리게 하는지는 모른다.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코뿔소 그림을 보내주면서 친구가 전하고픈 말은 “넌 참 듬직한 친구야.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때로 어떤 말은 평생 가슴 속에 남는다. 그 아이를 옥죄는 그 무엇에서 풀려나게 하는 친구의 선물이 되길. 그 작품에 담은 친구의 한 마디 말이 불꽃이 되면 좋겠다. 코뿔소처럼 거침 없이 나아가게 할 불꽃이.

 

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.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. 예술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시선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. 학교에서 작품 해설을 외우게 하고 정답을 찾게 하면서 눈이 멀었을 뿐이다. 그 작은 아이들이 눈을 떠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할 때, 내 눈도 보기 시작했다. 그 아이들 속에 두근거리고 있는 아름다움을. 그날 내게 예술은 그 아름다운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북돋아 주는 햇살이었다.

 

#UHMGallery #예술체험
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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